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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기독교인에게

C.S. 루이스와 진화론 (1)

진화론과 관련한 CS 루이스의 입장을 단정하는 글이 소개되곤 하지만 일치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화자의 의도에 따라, 때로는 아전인수 격으로 그의 입장이 해석되어온 감이 없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여느 기독교 지성인들처럼 루이스가 진화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진화론은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는 루이스에게 불편한 주제였지 결코 우호적인 주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루이스의 입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진화 또는 생명의 기원을 보는 과학 수준의 변화라는 변수입니다. 루이스가 생전 당시에 가장 첨단 학문을 접했다 하더라도 그가 분주하게 저술활동을 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이미 거의 칠팔십년 전인데 그 당시의 과학 수준을 바탕으로 가졌을 그의 입장을 밝혀내는 글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공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당시에 이미 양자물리학자들이 밝혀낸 초기 성과를 알고 있었고 첨단 과학의 업데이트에 늘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유신진화론자였는지, 젊은지구 창조과학론을 지지하였는지 오랜지구 창조론을 견지했는지 또는 지적설계론자의 수준에 가까웠는지에 집중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가 진화론에 대하여 일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시대의 상황이라는 변수도 있습니다. 특히 루이스가 어린 시절이었던 1911 년대 초 유인원과 인간을 연결하는 링크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진화론의 종결적 증거로서 주목을 받기도 했고 이 화석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진 1953년 전까지, 즉 루이스가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에 인간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의 주장은 그 어떤 때보다도 힘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루이스의 진화론에 대한 입장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진화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떤 방향의 입장을 가졌는지에 알고 싶어 하는 기독교인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그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그가 남긴 저술물들과 타인들과 주고받던 편지 속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입장을 최대한 건져내서 추론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듯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의 저술물들과 편지문 속에서 발견되는 사실들을 연대별 순으로 살펴보는 것이 보다 공정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루이스가 진화론에 대하여 일관적인 입장을 가졌다고 볼만한 충분한 자료는 없는 반면 저술 속에 남아있는 그의 견해가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1944

1944년 영국의 창조과학회(젊은 지구) 창시자라 할 수 있는 Benard Acworth가 전개한 Creationist Science Movement 즉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가르치는 것에 반대해온 운동에 CS 루이스는 기독교의 입장에서 진화론에 대해 같은 관점을 가지고 공조했습니다. ( Chronologically Lewis, Dr. Joel D. Heck, Professor of Theology Concordia University Texas April 19, 2020)

루이스는 Benard Acworth과 많은 편지를 주고받고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그 주제는 언제나 진화론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1944년 12월 9일 Benard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면 당시 루이스는 진화론에 대해서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나는 진화론을 공격도 방어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설혹 진화론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기독교는 아직 믿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게 당신과 내가 가진 입장의 차이일 것입니다. 귀하께서 앞으로 나의 변증 활동 범위에 진화론을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거짓 이슈 (false issue)를 위한 전쟁터로 나가라는 유혹일 수도 있고 한편으론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변증) 로서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The Collected Letters of C.S. Lewis, Volume 2)

1945

그런데 그는 1945년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도 합니다.

"도토리는 다 자란 참나무에서 나옵니다. 최초의 조잡한 엔진인 로켓은 그보다 더 조잡한 엔진이 아니라 훨씬 완전하고 복잡한 존재인 사람, 그것도 천재의 정신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생명의 출발점이었던 태아의 기원은 그보다 더 미숙한 그 무엇이 아니라 완전히 장성한 두 인간, 즉 부모입니다... 만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입니다. 언제나 미숙하고 불완전한 것이 완전하고 발달된 것에서 나옵니다 ... 그는(진화론 강연자) 완전한 생명체에서 불완전한 생명체가 나오는 모습을 그 반대의 경우 못지않게 많이 본다고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생명체의 시작에 대해서는 대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5. 두 강연’ 기독교적 숙고, 278-279, 홍성사 2011)

이 즈음 루이스의 관심은 진화론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그냥 지나치려고 하는) 부분 즉 '생명의 기원'의 문제로 가 있습니다. 사실 생명의 기원, 즉 최초 생명체인 단세포가 어떻게 생겨났을까에 대해선 현재까지도 미궁에 빠져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Youtube의 Dr. James Tour (Rice University 교수, 화학자, 나노분자 분야 석학) 채널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1949

진화론이 루이스에게 적지 않은 신학적 도전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1949년 8월1일자 Breckenridge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이스가 가졌을 만한 신학적 고민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죄론과 진화론 사이에는 어떤 중요한 관계도 없습니다. 진화론은 유기체가 생물학적으로 때로 더 나은 상태로 또는 더 나쁜 상태로 변화해온...(중략)... 원죄론은 특별히 인간이란 종이 도덕적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이고...(중략) ...진화론은 도덕적인 개선 이론은 아니고 다만 생물학적 변화. 즉 경우에 따라서 개선 또는 악화된다는 이론일 뿐입니다." (The Collected Letters of C.S. Lewis, Volume 2)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 그룹 즉 유신진화론자들에겐 창세기의 재해석과 정통신학의 재구성 문제가 대두됩니다. 그런데 루이스는 이런 면에서 일단 기독교 정통 신학과 진화론을 별개의 문제로 분명한 선을 긋고 있습니다.

1951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젊은지구 창조론을 지지한다고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일단 그가 젊은 지구론을 기본으로 하는 창조론에 대해 적어도 소극적인 또는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가진 듯 보입니다. 1951년 Benard Acworth가 저술한 책의 초고 This Progress: The Tragedy of Evolution, 즉 창조과학회의 입장에서 쓴 저서에 서문을 써달라는 요청에 대해 거부합니다. (Chronologically Lewis, September 1951, p987)

이러한 루이스의 거절은 뜻밖의 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Benard는 루이스가 과거 수년간 진화론과 관련해 수많은 서신을 교환해왔던 사람이고 많은 만남을 통해 친분이 깊은 사이가 그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진화론과, 진화론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젊은지구 창조론 사이에서 루이스가 가졌을 단순하지 않았을 심경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51년 4월 23일 DOM BEDE GRIFFITHS과의 편지에서 ‘창조의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진화 안에서의 인간의 존재에 대해 동의합니다만 나는 차라리 ‘창조의 과정이 진행 중인’ 것이라 말하겠습니다."

( The Collected Letters of C.S. Lewis, Volumn 3)

1953

그렇다면 그가 유신진화론자였을까요?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이 부분만큼은 다소 명료해 보입니다.

'루이스 입문서’라고 할 만큼 잘 알려진 ‘순전한 기독교 (reprint of 1940년대 BBC talks, 1953에 보완하여 발간 - 홍성사 2005판)에 적어도 유신진화론과 선을 긋는 입장을 추정할 수 있는 분명한 언급이 있습니다.

“ ...(전략).. 이른바 ‘생명력의 철학’ 내지는 ‘창조적 진화’, 또는 ‘돌연변이적 진화’에 대해 말해야겠습니다. (중략) 이러한 관점을 가진 이들은 지구 위의 생명체를 가장 하등한 형태에서 인간으로 ‘진화시킨’ 작은 변화들은 우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명력’의 ‘분투’나 ‘목적성’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중략) 많은 이들이 ‘창조적 진화’ 이론에 매력을 느끼는 한 가지 이유는, 이 이론이 하나님을 믿는 데 따르는 감정적 위안은 듬뿍 제공하면서, 믿음에 따라오는 덜 유쾌한 결과물들은 면제해 주기 때문입니다. (중략) ‘생명력’은 일종의 길들여진 하나님입니다.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스위치를 눌러 불러낼 수 있지만, 나를 귀찮게 하지는 않지요. 즉, 이 관점은 종교의 감동은 전부 누리면서 그 대가는 하나도 치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력’ 사상이야말로 지금까지 세상에 등장한 몽상 중에 가장 큰 성과물이 아닐까요?” (53쪽 각주 부문)

1961

1961년 5월 4일자로 Alastair Fowler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를 보면 진화론에 대한 루이스의 입장과 인식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뭔가 진지함에서 벗어난 듯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는 Fowler 가 루이스에게 헤르메스 신화의 내용을 인용한 이후에 보낸 답장이라는 상황이 배경으로 있기는 합니다.

"당신은 진화를 마치 개별 유기체와 같은 어떤 실체인 양 말씀하시네요. 게다가 이성적인 실체나 사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진화란 그저 추상명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아는 한, 하나님(신)과 개별 유기체들에 더하여 가령 반신반인 같은 존재나 또는 창조된 영혼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확실하게 논쟁이 되어야만 하겠죠? 제 말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또는 증거 없이 한 단어(noun)를 실체화시키려고 뛰어드는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The Collected Letters of C.S. Lewis, Volume 3)

진화를 추상명사라고 간주한다는 표현은 적어도 루이스가 진화를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다소 멀어졌다는 의미를 함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반신반인'이나 '창조된 영혼' (created spirit)의 존재 가능성을 개인의 의견으로서 부연하고 있을 만큼 루이스의 생각이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아닐지.

1963

루이스가 임종하던 해인 1963년, 그러니까 그가 생전 당시 거의 마지막 시기에 쓴 글 중 다음 문구는 기독교인 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사색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경구입니다

“모든 새로운 발견은 신비를 흩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14. 보는 눈, '기독교적 숙고’, 312쪽, 홍성사 2013)

​C.S. 루이스와 진화론 (2)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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