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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기독교인에게

C.S. 루이스와 진화론 (2)

이스의 글과 생각을 나누는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oups/cslewisofficial )에서 2022년 초 루이스와 진화론의 관계를 두고 몇 개의 포스트를 통해 며칠간 논쟁이 있었다. 댓글들은 대체적으로 ‘젊은지구론’ 진영과 ’유신진화론’ 을 지지하는 진영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다수 코멘트들을 읽으면서 안타깝게 느낀 것은, 유신진화론 진영의 사람들은 젊은지구론 (창조과학) 쪽을 지적으로 비하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젊은지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대 진영을 비기독교적 또는 세속의 이론에 굴복한 신앙인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기독교 내에서 진화론을 두고 대립하는 두 진영이 보여주고 있는 입장과 다를 바가 없다.

필자는 몇 개의 댓글로 의견을 표시했는데 이미 이 블로그에서 같은 제목으로 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루이스의 진화론에 대한 인식은 일관적이지 않고 시간에 따라 바뀌었다는 점, 특히 루이스는 처음엔 창조과학론 (젊은지구론)을 지지한 적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젊은지구론을 계속 지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적어도 그는 유신진화론자는 아니었음을 주장했다. 네트워크 상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의 논쟁이 늘 그렇듯, 마치 물과 기름처럼 합일점이 없이 끝나던 즈음, 한 무게감 있는 소논문을(research paper) 소개하는 글이 포스트 되었는데, 즉 1944년부터 1960년 사이에 루이스와 Benard Acworth (1885-1963) 간에 진화론을 화두로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논문 형식으로 다룬 글이었다. 편지들 중에는 앞글에서 인용한 것과 중복되는 것도 있지만 루이스가 진화론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졌었는지 파악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새롭게 발굴된 편지도 포함된다. 이 글이 포스트 되면서 논쟁은 자연스럽게 종료되었다.

 

다음은 해당 소논문을 번역한 것인데. 루이스의 편지는 내용 대부분에 대해서 번역을 했고, 논문 저자가 쓴 문장 중 이 글의 주제와 별 관계가 없는 내용과 저자의 논리적 상상력에 의한 주장과 관련된 내용은 번역을 생략하고 (글의 맥락으로 보아 논문 저자는 아마도 창조론자들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진 유신진화론의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필자가 동의하는 내용을 선택적으로 번역했음을 밝혀둔다. 논문의 상세한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링크된 원문을 직접 읽을 것을 권한다.

 

논문의 번역에 이어 필자의 소견을 제언의 형식으로 다소 장황하게 정리했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진화론에 대하여 가졌던 심경과 입장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도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고, 특히 루이스와 유사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현대 기독교 신앙인들도 다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진화론 문제를 관심 있게 보아온 한 기독교인으로서, 젊은지구론의 창조과학회와 유신진화론의 과신대가 그려가는 평행선의 비극을 안타깝게 보는 입장으로 돌아가 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C.S. Lewis on Creation and Evolution: The Acworth Letter, 1944-1960

제1저자: Gary B. Fergren (오리건 주립대 역사학부)

https://www.asa3.org/ASA/PSCF/1996/PSCF3-96Ferngren.html

루이스가, 출판된 많은 저작물 속에서 창조와 진화에 대해 자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언급할 때마다, 오늘날 ‘유신진화론’의 범주로 간주되는 입장을 옹호함(이는 사려 깊은 분석은 아니다. Mere Christianity 개정판을 내면서 각주를 통해, 한 유신진화론적 논지를 강하게 반박하는 주장을 쓴 경우가 있다. 역자 주). 루이스가 Acworth에게 1944년부터 1960년 사이에 보낸, 이전에 공개된 일이 없는 일련의 편지에서 루이스는 기원 문제 (진화론)에 대한 그의 견해를 어느 정도 길게 설명함. 편지들은 루이스가 생애의 말년에, 진화론에 대하여 느끼는 불편함이 점증되었음을 보여줌.

Bernard Acworth는 누구?

1885-1963

  • 영국 해군 대위 출신, Sonar - 수중음파탐지기 기술 발명가, 저술가, 영국 창조과학회 창시자
  • Acworth와 C. S. Lewis (1898-1963) 간의 친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 다만 잔존하는 편지가 두 사람 간의 관계의 시작은 아닌 것이 확실. 루이스가 옥스퍼드에 방문할 때 종종 Acworth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갈 만큼 둘 사이는 친밀.
  • 1930년대 중반, Acworth는 다른 두 동료와 함께 ‘유기물 진화’가 과학적 사실로서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것에 대한 반대하는 ‘진화론 저항운동 (Evolution Protest Movment)’을 시작.
  • 저서 ‘진화론의 비극 This Progress: The Tragedy of Evolution (1934)’에서 심리적 분석을 통해 ‘진화론의 목표는 결국 도덕의 격하 moral degradation’라고 일갈. 영국의 나은 미래를 위해 진화론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주장.
  • 진화론과 기독교가 양립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Acworth가 루이스로 하여금 진화론 저항운동 참여를 독려했을 것은 자명. 루이스는 1951년까지는 진화론에 대한 Acworth의 입장에 동의했던 것으로 보임. 다만 진화론 반대 운동에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음.

루이스의 편지

To: Bernard Acworth, between 1944 to 1960

1944년 9월 23일

진화론이, 그것이 진실이든 허위이든, 기독교인의 믿음에 중요한 근간이 된다는 것에 동의하냐고요? 이 질문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데, 그것들 중의 어떤 것에 Yes라는 답을 한다면 그건 아주 심각하게 나의 입장을 잘못 표현한 것입니다. 나는 인간은 선한 상태로 창조된 상태로부터 타락에 이르렀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교리와 배치되는 어떤 이론도 믿지 않습니다. 진화론에 관한 모든 이론이 그 교리에 배치되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사도신경과 대치되지 않는 (또는 나의 온전하지 못한 추론의 과정으로 인해 사도신경에 반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생물학적 정리에 대한 나의 말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주의 휜 (curved) 공간에 대한 나의 의견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겁니다. 단지 불멸의, 이성적인 영혼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나로 하여금 내 배아의 출산 전의 역사에 대한 특정한 이론을 받아들이도록 의무화하거나 또는 받아들일 자격을 부여하는 게 아닌 것처럼, 일반적으로 인간이, 불멸의, 이성적인 영혼을 가졌다는 나의 믿음이, 인간이 되기 전의 유기적 역사 (만약 있다면)에 대한, 한 이론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거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1944년 12월 9일

흥미로운 편지 감사하지만 나는 내 입장을 확실하게 할 수 없네요. 나는 진화론을 공격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비록 진화론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기독교(교리)는 아직 믿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점이 당신과 나와의 차이입니다. 정말 잘못된 것을 위해 싸우라는 한 유혹처럼 들리지만,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로서는 아주 적합하지 못한 영역이기도 해서 귀하의 부탁 (나의 기독교 변론의 범주에 진화론에 대한 반론을 포함시켜 달라는)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무신론은 에피쿠로스(Epicurus 341–270 B.C.E) 만큼 오래되었고 다신론자들 중에 극히 일부만이 그들의 신들을 창의력이 있는 신으로 간주했습니다.

1950년 6월 14일

보내주신 책자 감사합니다. 내가 이 나이에 어떻게 나를 다윈진화론자들에 충분히 맞설 정도의 생물학자가 될 생각을 할 수 있겠나요.

1951년 9월 13일

Evolution 을 거의 모두 읽었습니다 (아마도 Acworth의 미발간 저서 “The Lie of Evolution”인 듯). 그 책이 내게 충격을 주었다고 고백해야겠네요. 진화론에 대한 가장 애매하고 가장 어중간한 나의 믿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가 전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의 믿음을 흔들었습니다. 내가 좀 더 젊었으면 좋겠네요.

진화론을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거짓의 전체 거미줄 안에 있는 중심적이고 급진적인 거짓으로서 간주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진화론에 반대하는 당신의 주장 때문이라기보다는 진화론을 방어하는 사람들의 광신적이고 뒤틀어진 태도 때문입니다. 인류학 부문은 특별히 좋습니다.... 자연의 전체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많은 종들의 동시성을 요구한다는 점은 아주 끌리는 점입니다.

1951년 10월 4일

아니요, 두렵네요. 나는 많은 것을 잃어야 하고 당신은 내가 쓴 서문 때문에 거의 잃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윈에 대한 당신의 관점을 의심하는 어느 누구도 나의 증언에 의해 영향받지 않습니다. 알려졌다시피 나는 과학자가 아니잖아요. 나의 책을 읽고 기독교를 향해왔거나 향하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반진화론 운동에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알면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누가 자신을 알까요!) 그것이 한 저자로서 위험에 처했다는 개인적인 우려라면 나는 이러한 고려에 의해 영향받도록 저 자신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서있는 그 원인 역시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유명한 변론 짜가 되면 그는 발걸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모두들 그를 흠집 내려는 것들을 찾거든요. 미안합니다.

1953년 12월 16일

당신의 격려 카드 많이 감사합니다. Piltdown 폭로와 관련해서 당신과 함께 통쾌함을 금할 수 없네요. (그해 초 진화론 학자들이 인류의 조상과 연결되는 화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것이 가짜임이 밝혀짐) 그러나 바라기는 반대편에 선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저돌적으로 다루거나 부당하게 이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기독교)는 다음 두 가지 사실에 대해 대답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지 모릅니다.

  1. 위서로 판명된 로만 가톨릭의 교령, 가짜 기적 등, 과학자들이 아직 밝히지 않은, 기독교가 생산한 수많은 가짜들이 있다는 점
  2. 그들(과학자들) 은 그들 자신이 저지른 가짜들을 발견하고 공개했다는 사실.

그러나 이것이(가짜 화석 폭로 사건) 산사태의 시작일 뿐이라면 당연히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Charles Lyell (다윈의 친구로서 ‘자연선택’ 이론을 만드는데 기여함)를 결코 읽은 적이 없습니다. 읽어야 하나요?

1959년 9월 18일

나는 당신 측의 젊은 생물학자 (이름 미상)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의 경험은 정교회 생물학자들의 수상쩍은 부정직함과 더불어 나를 다시 감동시킵니다.

1960년 3월 5일

지구 축과 황도 사이의 각도의 파국적 이동에 대한 당신의 이론 (노아 대홍수와 시베리아 매머드를 얼린 급격한 기후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Acworth가 주장한) 이 밀턴의 실낙원 (10장, 아마도 11장)과 밀접하게 대비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타락 이후 조건의 변화가 야기될 수도 있었던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회 (Pierre Teilhard)가 쓴 de Chardin(인간의 현상) 이란 책 - 하늘에의 찬사를 받고 있는 - 을 읽어보셨나요?

진화론이 미쳐가네요 (evolution run mad). 그는 생명이 있기 전에 물질 내에 ”전 생명"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연속성"을 확보시켜줍니다.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게 납득이 가나요? 마치 지하실의 전등 스위치를 켜기 전에 (만약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사전 빛”이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올바른 단어는 "darkness"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미래로 넘어갑니다. 내게는 시답지 않은 말을 하는 Henri Bergson과 위트도 없는 George Bernard Shaw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물론 범신론과 같은 듣기 거북한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 자신의 예수회는 그 주제에 관한 더 이상 책을 출판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그건 매우 옳았습니다. (하략. 편지 끝)


루이스가 Acworth에게 보낸 편지들은 진화론에 대한 루이스의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루이스의 진화론에 대한 입장의 변화 추이를 알게 해 줌. 루이스가 창세기의 창조를 문자적으로 이해했다는 증거는 없음. 그는 반복적, 공개적으로, 창조를 ‘전설’ 또는 ‘신화’와 같은 것으로 비유해서 설명함.

Acworth에게 보낸 첫 편지로부터 4년 전에 출판된 저서 ’고통의 문제 (1940)’에서 인간은 동물의 후손이며 하나님이 어느 순간 ‘의식’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며 즉 동물로부터 탈피해 인간이 되게 했다는 자신만의 고유의 해석을 소개함. ([고통의 문제], 홍성사 2002, p127 이하 참조. 이 책에서 루이스는 ‘소크라테스식 신화’-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는 이야기- 의 형식을 빌려 인간의 기원을 설명한다. 이는 당시에도 그가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단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언제라도 발을 뺄 수 있는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자 주)

 

루이스는 유신론적 유기물 진화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름. 그러나 그러한 과학 이론들로부터 거대한 철학적 함의를 그려내는 것은 거부함. 이러한 그의 진중함은 1940년대에 쓰인 것으로 보이고, 그의 사후에 발표된 에세이 ‘위대한 신화의 장례식 (The Funeral of a Great Myth - [기독교적 숙고] 홍성사 2013, 7장)’에 잘 암시됨. 이 글에서 루이스는 ‘현역 생물학자들에 의해 지지되는 진화 이론’ 즉 그가 ‘순수한 과학적 가설’이라고 여기는 이론과 다윈의 ‘종의 기원’을 근거로, 추측을 근간으로 한 진화론을 구분함. 루이스는 특히 인간의 이성과 질서 있는 우주가 무기물이나 비이성적인 것으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주장에 반대함.

 

편지에서 언급된 내용을 미루어 보건대, 루이스는 1940년까지는 진화론을 받아들였지만 진화주의 (evolutionism)는 거부한 것으로 보임. 이 시기 전까지는 어떤 글에서도 과학의 성과에 대해 - 비록 과학 이론은 다른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때까지 잠정적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지만 - 작은 (a basic) 적대감도 보이지 않음.

그 이후의 편지에서 (1950년대) 루이스는 진화주의에 대해 점점 더 비판적인 입장을 보임. (1951년 9월 13일 편지에서 “진화론을 방어하는 사람들의 광신적이고 뒤틀어진 태도”라는 강한 언어를 사용함) 루이스는 이미 그전에 쓰인 글인 ‘위대한 신화의 장례식’에서 진화론을 비판하는 Watson의 주장을 인용함. “진화론은 동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데, 그게 실제로 관찰되었거나 또는 논리적으로 사실임을 알 수 있는 일관성이 있는 증거 때문이 아니라 유일한 대안인 특별 창조(special creation)를 명백하게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루이스의 후기 글들은 진화론에 대한 그의 냉소적 시각을 보여줌 ( “진화주의가 신학적 교리가 되었다"라는 표현을 씀)

당시 진화론은 종교적 교리(creed)로서 만연해있고 깊게 연루되어 있어서, 심지어 진화론은 공격을 유발한다는 의문이 들 정도. 예를 들어 맑시스트 유전학자 Haldane는, 한 악의적인 칼럼을 통해, 루이스가 잘못된 과학소설로 과학자들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비난함. 이는 아마도 진화론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속적 세계관이 된 철학적 자연주의 이론에 기초해서 정립되었기 때문인데 - Haldane의 지론으로서 -, 이는 1951년 9월 13일 편지에서 언급된 것처럼 루이스가 Acworth와 동의했던 것임.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기만의 전체 거미줄 안에 있는, 중심적이고 급진적인 거짓...”

루이스의 공식 저술물을 통해 살펴보면 그가 (한때) 가지고 있었던 입장, 즉 생물학적 진화론이 기독교와 병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철회했다는 증거는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Acworth’s의 미발간물 (진화론이 거짓임을 통렬하게 비판한) 을 읽은 후 호의적인 면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임. (I must confess,... it has shaken me ..) Acworth와 교신한 편지들의 내용은, 루이스가 초기에 진화론을 받아들였던 입장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멀어져 가기 시작했음을 암시함.

 

요약

(역자)

편지들과 논문을 토대로, 루이스가 보여준 진화론에 대한 입장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때 젊은 지구론 (창조과학)을 지지하기 했지만 공식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선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2. 저술물을 통해서는 대체적으로 유신진화론적 입장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고.
  3. Acworth와의 교신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인생 말기에 접어들면서 (1950년대) 점증적으로 진화론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다.

 

제언 - 대안 모색

역자

루이스가 가졌던 진화론에 대한 복잡한 심경은 현대 기독교인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이스 당시 영국 내에서 진화론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기독교계 내의 두 진영은 특히 현대 한국 기독교계 내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회를 중심으로 한 젊은지구론과, 과신대라는 기구를 중심으로 유신진화론이 각자의 영역과 주장을 유지, 전파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그 밖에 오랜지구론을 지지하는 그룹과 ‘지적설계 (Intellegent Design)’ 그룹이 정기적인 포름 개최 등, 목회자와 학자 층 등을 중심으로 한 연구회의 형태를 유지하며 조용히 기반을 다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앞의 두 진영일 것이다. 즉 젊은지구론의 창조과학회와 유신진화론의 과신대.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젊은지구론'과 '유신진화론'의 입장 차이는 성서 창세기를 보는 시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젊은지구론은, 성경의 문자적 연대 계산을 기준으로 지구와 생명의 역사는 길어야 1만 년 정도이며, 창조는 신비적인 과정을 통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입장인데 반해, 유신진화론은, 단시간에 진행된 신비의 과정은 없으며. 46억 년의 지구 역사 속에서 방향성 있는 (Guided) 진화를 통해 진행된 유기물의 진화 과정을 신학적으로 인정해야 하며, 창조와 관련한 성경의 전통적 해석이 과학적으로 명백히 틀렸으니 이를 바로잡고 기독교 신학을 재정립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아닌 이상, 신학적 지식이 없고 과학적 지식도 풍부하지 않은 다수의 평범한 기독교인들이 결코 쉽게 판단한 할 수 없는 사안임이 분명할 뿐 아니라, 특히 유신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신학의 재정립 문제는 기독교계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주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금 엉뚱하지만 이 즈음에서 다소 거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진화론은 과학적인 이론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치 선지자 코스플레이를 하며 신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유신진화론자들에게, 또 지구의 역사는 1만 년 정도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소위 창조과학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주장에 1%의 오류 가능성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지배적 카르텔의 안위 속에서 자연선택이라는 '만능의 마술사'를 들먹이며 온갖 환상적인 스토리를 써온 진화 생물학자들에게서, 양자물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종교적 신념과 전혀 상관없는 이론 물리학자들이 양자의 차원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답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예컨대, 이론물리학자 Dr. Paul Davis 가 구분하며 제기하는 software, hardware의 문제들, 다른 소장 학자들이 Quantum Biology 차원에서 제기하는 자연선택의 한계에 대한 근본적 의문들 등), 지적설계론자들이 확률과 관측은 물론 발견된 화석 등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근거로 진화론의 한계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아예 상대하고 싶지 않듯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지구의 연대가 1만 년 이상이라는 과학적 증거 (현재 수준에서)는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전혀 요동치 않는, '젊은 지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핑계로 한 고집 같은 신념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아주 많이 양보해서 1%의 오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이를 감히 과학적 진리로 상정하고 그것을 위해 한 인생을 거는 행위는 얼마나 무모한가! 더군다나 남의 인생에까지 관여를 한다면 이는 과학 또는 계몽이라는 언어로는 평가해 줄 수 없는, 오히려 선의의 신앙을 교란시키는 행위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성경을 아예 읽지도, 배우지도 못한 어린이가 더 훌륭한 기독교 신앙인의 자격을 갖는다는 성서의 진리는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가. 100퍼센트 진실의 확신이 없다면 그건 이미 진실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지 않은가.

아주 많이 양보해서 1%의 오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이를 감히 과학적 진리로 상정하고
그것을 위해 한 인생을 거는 행위는 얼마나 무모한가!

이런 측면에서 루이스가 보여준 입장을 다시 한번 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가 한때 저술물들을 통해 오늘날 유신진화론으로 간주되는 내용을 십분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경우에도 그는 결코 성경에 대한 전통적 해석의 오류 가능성을 한 번도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신 그는 '신화' '전설' 등의 형식을 거론하면서 우회로를 택했다. 물론 그가 진화론과 관련해서 어떤 신학적 내용의 고민을 했으며 그가 나름대로 정립한 대안은 무엇이었는지 상세하게 알 길은 없다. 다만 우리가 앞의 편지를 통해 확인한 것은 그가 매우 난처한 상황에서 다분히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루이스가 이럴진대,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두 진영의 입장 차이를 두고 양자택일을 강요 당할 경우 매우 불합리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은 자명하다. 즉 제대로 알고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있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대신, 스스로 전문가임을 자칭하면서, 전혀 준비가 없는 성도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킬 경우,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여건에 있는 다수의 청중들은 결국 자신의 진실한 판단 없이 무리를 지어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중립적인 입장이 있을 수 있고 그 중립적인 입장이 나름대로 과학적, 신학적 일리를 가질 수 있다면 이 입장이야말로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의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국 기독교 전반에 걸쳐 일어난다면 기독교인들끼리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단지 주장하는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향해 반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자기들의 주장을 수호하고 전파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는 대신, 그 역량을 기독교 전체를 위해 좀 더 건설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젊은지구론자들이든 유신진화론자들이든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지구의 나이가 1만년이냐 46억 년이냐의 문제에 있지도 않고,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되었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직접 창조했느냐의 문제에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린 이미 합의되거나 조정된 결론도 없이 무수한 시간을 서로 반목과 갈등을 반복하며 허비해오지 않았는가. 그보다는 우린 자연 현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창조의 결과로서 우리 앞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무수한 감동거리들을 찾는 일에 골몰해야 하지 않을까. 단일 세포의 놀랍도록 정교한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DNA의 엄청난 작동원리를 발견하면서, 미세 조정된 우주 안의 놀라운 질서를 확인하면서 하나님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기독교인이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마치 이웃의 존재와 사랑처럼 믿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한 푼 지식이 아니라 전율을 일으키는 감동이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푼 지식이 아니라  전율을 일으키는 감동이다.

다행스럽게도 루이스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한 훌륭한 과학자를 발견했다. 나노분자 분야 세계적인 석학이면서 독실한 기독교인인 James Tour 박사다. 그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며, 때문에 이 글의 결론으로서도 의미가 충분히 있을 것 같다.

 

James M. Tour, Ph.D.

Rice University 교수

T. T. and W. F. Chao Professor of Chemistry

Professor of Computer Science

Professor of Materials Science and NanoEngineering

Smalley-Curl Institute and the NanoCarbon Center

생명의 기원 관련 유튜브 동영상 다수

 

그는 진화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학자인 동시에 젊은 지구론에 대해서도 판단을 유보하는 보기 드문 현대 과학자로서 일면 루이스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필자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현직 과학자로서 그가 그러한 입장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에서 밝힌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유신 진화론은 하나님이 개입된 방향성을 언급하지만, 화학자로서 그러한 것을 증명할 만한 화학적 모델을 본 적도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 (역자 주: 여기서 언급하는 화학적 모델은 최초 생명체인 단일 세포의 경우를 지칭하며 Tour 박사는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통한 '화학적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단일 세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성 있게 견지해왔다. 상세한 내용은 해당 동영상을 참고)
  •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도 나의 지식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 내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험적으로 그동안 과학은 많은 경우 오류를 범해 왔기 때문이다. (예: 1980년대에 발견된 7천만 년 전의 공룡 화석에서 적혈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설명 불가능. 적혈구가 보존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며칠)
  • 유대인 물리학자인 Dr. Gerald Schroeder에 따르면, 빅뱅의 순간, 우주가 급격히 팽창한 것을 고려하면 창세기의 24시간과 우주의 역사로 인정되고 있는 136억 년과는 큰 차이가 될 수 없다는 주장. 즉 과학에서 상정하는 모든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 (이외에도 Schroeder 박사는 성서 창세기에 첫째 날, 둘째 날 등 서수 방식으로 표현한 성경은 히브리어 원문의 번역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24시간 개념으로 볼 수도 없다는 점을 설명. 그에 의하면 히브리어의 원문에서 칠일은 연속된 날을 의미하지 않음. 역자 주)
  •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내가 확실히 아는 것 이외에는 분명하게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본인이 지금 이 순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지금까지 과학자들의 해온 모든 실험은 잘못된 것이며, 실험과 연구로는 결코 생명의 기원 (단일 세포의 기원)을 밝힐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의 신앙을 그 자체로 받아들 일 수 있다.

 

관련 링크

문서, 동영상

https://www.asa3.org/ASA/PSCF/1996/PSCF3-96Ferngren.html

C.S. Lewis on Creation and Evolution: The Acworth Letter, 1944-1960

https://youtu.be/Ic4GP87gSoY

James Tour, Ph.D, What's the age of the Universe? Does Science CONTRADICT the bible? (37:32 - 50:31 참조)

https://youtu.be/71dqAFUb-v0

James Tour, Episode 0/13: Reasons - A Course on Abiogenesis (생명의 기원 관련 13편의 강의 시리즈)

https://youtu.be/OYHHIBIZF8o

James Tour, Scientists are Clueless on the Origin of Life | Lecture @ Andrews University

https://youtu.be/bS6TXh_bx8Q

Dr Mary Schweitzer discovers T-rex blood cells - Horizon: Dinosaurs: The Hunt for Life (BBC)

7천만 년 전 공룡 화석에서 발견된 적혈구 관련

https://www.nehemiaswall.com/hebrew-voices-a-physicist-on-creation-evolution-and-the-human-soul

Gerald Schroeder, Creation, Evolution, and the Human Soul (2016 팝캐스트), (Ph. D Earth Sciences and Physics, M.I.T)

http://www.geraldschroeder.com/AgeUniverse.aspx

Gerald Schroeder, The Age of the Universe (2011)

C.S. 루이스와 진화론 (1)

https://blog.naver.com/yunheegyun/222222976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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